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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출생 : 1879년 3월 14일 

독일 출신 유대계 스위스-미국 국적의 물리학자입니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이론물리학자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브라운 운동과 광전효과를 증명하고, 양자역학을 발전시켰으며

상대성 이론을 창시해 현대 물리학의 발전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습니다.

21세기에 증명된 중력파의 존재를 100여 년 전에 예측하는 등 현재까지도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아인슈타인 그가 이룬 놀라운 지적 업적들과 독보적인 창의성은 그 이름이 천재와 동의어가 되는 결과를 만들었습니다.

타임지는 20세기를 대표하는 세기의 인물로 아인슈타인을 선정하기도 하였습니다.

 

 

1905년 당시 26세이던 아인슈타인은 한 해 동안 공간, 질량, 시간, 에너지에 대한 개념을 완전히 바꿔버리고,

물리학의 근간을 뒤흔드는 창조적이고, 혁명적인 논문 4편을 발표하였습니다.

 

 

 

아인슈타인의 유년시절을 보면 어렸을 때부터 천재성을 보였고, 

12~16세에는 미적분을 혼자서 공부를 하며 유클리들 기하학을 보고 그 논리성에 감탄을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아인슈타인은 어린 시절에는 천재답지 못한 일화도 있는데

지적장애는 없지만 3살 가까이 되어도 쉽게 말을 하지 못하였고

7살이 되어서도 부모님이 시키는 간단한 심부름도 잘하지 못했을 정도록 인지적인 발달은 꽤 늦은 편에 속했다고 합니다.

 

 

 

청소년기에는 김나지움에 진학하였는데 수학, 물리학에 심취하여 당시 교육과정을 뛰어넘어

교사들에게 어려운 질문을 해 유명한 학생이 되었고, 졸지에 아인슈타인이 공부 못하는 아이였다는 오해도 받게 됩니다.

 

 

아인슈타인은 취리히 연방 공대에서 수학 물리 교육과정을 전공하였습니다.

대학 진학 후에 물리학에 더 큰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대학 시절에 자신이 좋아하는 과목을 제외하고는 출석을 거의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로 인해 지도교수는 그의 자만심과 불성실한 자세를 싫어하여 추천서를 써주지 않았고,

대학전공과는 무관한 곳에서 첫 직장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아인슈타인은 과학적 업적과는 별개로,

한 인간으로서 가장 크게 비판을 받게 되는 부분이 있는데

바로 결혼생활에 관한 것입니다.

- 내 옷과 빨랫거리를 잘 관리하시오.

- 세끼 식사를 제시간에 내 방으로 가져오시오.

- 내가 요구할 경우 즉각 침묵하시오.

- 내가 요구할 경우 일체의 항의 없이 즉시 내 침실이나 서재에서 나가시오.

등 이런 사항들을 철저히 준수하라고 하였답니다.

 

 

 

아인슈타인은 1955년 4월 18일 사망에 이르게 됩니다.

공식적인 사망이유는 복부 대동맥류 파열로 인한 내출혈입니다.

 

이스라엘 건국 7주년 기념행사의 연설을 준비하다 쓰러졌는데 병원으로 실려갔을 당시

"나는 내가 떠나고 싶을 때 떠나고 싶소. 인간의 기술로 삶을 늘리는 건 천박한 짓인 것 같소. 내 사명은 이제 끝냈으니, 우아하게 갈 때라오."

라는 말과 함께 수술을 거부하였고,

다음날 아침까지 연구를 계속하다가 결국 사망을 하였다고 합니다.